아브라함×멜기세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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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은 부름을 받은 후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도록 선택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 자신의 계시를 역사 속으로 흐르게 하십니다.

아브라함 안에 모든 것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계시를 가지고 역사를 침략한 부족에서 국가로 변화된 후손인 이스라엘이 태어났습니다. 그들은 목적이 있는 기록된 역사적 계시를 지닌 민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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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왕들과 맞서 조카 롯을 도우며 국제 전쟁에서 승리하고 승자 측에 섰던 그가 적대자들의 전리품을 가지고 돌아올 때 이상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여기에는 멜기세덱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살렘의 왕, 평화의 왕, 예루살렘의 왕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멜기세덱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고 말씀하셨고, 아브라함도 역사상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다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 즉, 아브라함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고 하나님의 계시를 역사 속으로 전달하도록 선택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계시를 아브라함에게만 국한하지 않으셨고, 더 나아가 역사 속으로만 국한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으로부터 멜기세덱에게로 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며, 아브라함 없이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이나 방식으로 자신을 계시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여기서 암묵적으로 말하는 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목적 있는 계시를 지니고 있는 한, 아브라함을 통해서만 자신을 계시하지 않을 것이며, 아브라함은 계속해서 원하는 사람에게 자신을 계시할 자유가 있었으며, 멜기세덱에게 자신을 계시했고,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 그보다 더 나아가 아브라함이 보았을 때 그는 그에게서 우월성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멜기세덱이 가져온 빵과 포도주를 가져왔는데, 이것은 신약에서 비교할 수 없이 성찬식으로 거행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 사람이 십일조를 바치는 것을 보고, 아브라함은 이 사람에게 축복을 받기 위해 몸을 굽혔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이 사람에 대해 알려진 바는 아무것도 없으며, 다만 그에게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만 알려져 있습니다.

  • 이 글은 구약성서에서 발췌하여 히브리어로 재해석한 것으로, 훨씬 더 풍부한 계시를 담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이미 이 멜기세덱을 통해서 메시아가 제사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레위 제사장직은 종교적 지루함의 제사장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아마도 당신의 질문은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나는 두 가지 길을 봅니다.

  1. 아브라함의 길은 하나님의 역사적 계시의 길이라고 저는 부릅니다.
    1. 아브라함은 이름, 장소, 아내, 자녀, 조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위치, 장소,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계시를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모든 역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책, 족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2. 멜기세덱에게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계시의 길을 볼 수 있습니다.
    1. 아브라함에게는 각 족장의 이야기에 시작과 중간, 끝이 있지만 멜기세덱에게는 시작도 중간도 끝이 없습니다.
    2. 아브라함에게서 우리는 이름이 있는 온전한 혈통을 찾을 수 있지만, 멜기세덱에게서는 누구의 이름도 찾을 수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에게, 원하시는 방식으로,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대로 자신을 계시하시는 설계와 주권에 따른 것일 뿐입니다.
    3. 멜기세덱의 경우는 분명합니다. 그는 족보도 없고,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습니다. 그는 단지 나타납니다. 그는 역사 속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가져갑니다. 그는 하나님의 예측 불가능성에 대해 말하고,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고 원하는 곳, 원하는 사람에게 나타날 수 있는 완전한 자유에 대해 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하나님이 되기 위해 가져야 할 자유입니다.
    4. 만약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만 자신을 계시하셨다면, 하나님은 역사 속에 국한되실 것이고 우리는 모두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역사적이고 종교적인 도구에 의해 완전히 제한을 받으실 것입니다.
    5. 제사장들과 선지자들 사이의 큰 갈등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1. 레위 자손의 제사장들은 하느님께서 오직 그들을 통해서만 자신을 나타내시기를 원했으며, 그들과 그들의 의식을 벗어나서는 하느님께서 아무에게도 자신을 나타내실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2. 그러나 선지자들은 그 곡선 바깥에서 평행선을 달리며, 제사장적 율법주의 밖에서는 불복종했습니다. 그들은 말했습니다. "아니! 하나님은 너를 통해, 너를 위해, 심지어 너를 대적하여 자신을 나타내시는 하나님이시다!"
    6.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신을 드러내시는 두 가지 방법이 여기에 제시되어 있습니다.
      1. 멜기세덱에게서 허락을 구하지 않고도 나타나는 이 영원한 계시가 더 높은 길을 가져다줍니다.
  3. 그리고 당신은 나를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좋아, 하지만 그게 뭐 어때?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야? 무슨 의미가 있는 거야?"

생각해 보면 그 의미는 셀 수 없이 많을 겁니다. 제가 도와드릴 수 있다면 시도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1. 첫 번째 의미는 아브라함에게서 눈에 보이는 믿음을 발견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신 백성의 전체 이야기를 알려주는 책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읽는 믿음, 관습이 있는 영토를 가진 믿음, 이스라엘에서는 춤이 없는 파티가 없습니다.
  2. 아브라함에게서 우리는 믿음을 얻고, 그 믿음은 믿음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음을 종교로 만들 때마다, 비록 당신이 원하지 않더라도, 당신은 항상 종교의 길로 들어서게 될 것입니다. 종교에 반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3. 그래서 일신교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유대교가 되었고, 유대교는 기독교로 변화하였고, 이슬람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4. 하지만 멜키세데크의 경우는 의미가 다릅니다. 멜키세데크에서는 아무것도 건드릴 수 없고, 매우 구체적이고 추상적인 것에 머물러야 합니다.
  5.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믿음은 언제나 공동체적 차원을 지닙니다.